부엌 싱크대 뒤편 벽에는 오라 노트와 코르테즈 스피커가 있다.
설거지할 것이 많을 때 듣는다.
그런데 꼭 설거지를 시작한 후 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대한 물 묻지 않은 부분으로 스위치를 누른다.
리모콘 밧데리가 나간 지는 한참 되었다.
랜덤으로 들으면 좋은데 이젠 1번부터 들어야 한다.
CD도 몇 달째 그대로이다.
펫 매스니의 비욘드더미조리스카이.
수돗물 소리에 그릇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섞이는 음악소리.
그래도 좋기만하다.
퉁퉁~ 기분 좋은 베이스소리에 명쾌한 기타소리 단단한 드럼소리.
설거지는 시작하긴 어렵지만 물을 묻히면 할만하다.
때로는 이 설거지란 것이 매우 성찰이 있는 작업인 듯하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하여, 사람끼리 부대끼는 일에 대하여.
생각이 격해지는 순간엔 꼭 그릇을 미끄러뜨린다.
설거지가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나오는 곡이 있다.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제목 참 멋지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글자 모양부터 훌륭하다.
뭔가가 있는 듯하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이집트 왕과 처음 만난 때가 있다.
그때만 해도 어마어마한 나라였던 이집트의 왕이 굶주림을 피해 온 야곱이라는 노인에게 묻는다.
“네 나이가 얼마냐?”
먼 길을 온 노인 야곱이 대답한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백삼십의 노인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하였다.
그 장면과 함께 떠오르는 글이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왜 그 곡을 들으면 그 생각이 날까.
오늘 그 곡을 2층 시청실에서 솔루스로 듣는다.
물소리도 덜그럭 소리도 없이 들으려니 약간 어색하다.
그래도 참 좋다.
낮은 볼륨으로 들어본다.
앞의 벽이 열리고 하늘이 펼쳐진다.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 한 마리의 비행이 그려진다.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
언젠가 본 아이맥스 영화에서처럼 넓은 들판 높은 산들이 보인다.
복엽기 엔진의 숨 가쁜 진동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출력을 줄이지 않고 급강하를 하다 기수를 들어 올려 다시 솟아오른다.
다시 높은 하늘이다.
창밖엔 봄비가 오는데 잠깐 꿈을 꾼듯하다.
참 좋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