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듣다.

스피커와 앰프를 마저 팔아치우고, 당장이라도 새 물건을 내릴 것처럼 서두르다 주춤해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제 룸을 거쳐한 잘 기억이 안나는 녀석들과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녀석들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 잠시 짧고도 길었던 제 오디오 편력의 시간들을 되돌아 보게 해줍니다. 제 심정상, 소스기는 아직 바꿀 마음이 없는지 그대로 두었군요. 그들로만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리스닝 룸에 들어갈 때마다 제 자신을 슬프게 합니다. 단 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았던 며칠이 지나니 이제 마음이 조금 고요해 오는 느낌입니다. 항상 가득 채워진 사진만 찍고자 노력을 해왔었는데... 어느 에세이집에서 읽은, 한국 사람들은 해외 여행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유적지나, 명건물 등을 사진 찍느라 뒤통수로만 쳐다보고 온다는 글귀를 읽으며, 문득 앰프와 스피커가 없는, 게다가 황급히 빠져나간 녀석들의 그 어수선한 뒷모습을 그대로 둔채 이 광경을 사진에 담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항상 좋은 기계를 쓸 수만은 없을 겁니다. 항상 지금 보다 더 나은 물건이 제 룸에 들어온다는 보장 또한 없을 겁니다. 소리를 뽑아내 주어야 할 앰프와 스피커가 사라진 이 공허한 오디오 공간에서 예전에 음악을 듣던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어와 한시간씩 고독과 정적을 즐기고 안방으로 돌아갑니다. 오디오 잡지를 뒤척이며, 인터넷을 헤매며 내가 원하는 물건이 무었이었는지를 찾아나서다, 이 공허한 공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깨닫게 됩니다. "물건을 찾지 말고, 소리를 찾자!" 당장 저지르고 싶은 이 불같은 마음을 누르고 또 누르며 앰프와 스피커가 비어있는 곳을 응시하며 천천히 마음 속으로 소리를 그려봅니다. 정적 속에서도 마치 음악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며칠간을 더 정적을 즐겨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