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스테이트먼트를
오늘 낮에 택배로 받았습니다.
박스 외피를 이중으로 싸고 안에는 스티로폼으로 둘러서
튼튼하게 포장되어 있더군요.
포장을 벗기고 스피커 본체를 들어내어 내피를 마저 벗겼습니다.
가벼운 긴장 속 첫 대면...
피아노 블랙 마감이 아주 고급스럽습니다.
조심 조심...
미리 준비해두었던 스탠드에 고이 모셔두고
진공관에 불을 지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도도한 자태에 문득
어제 오늘 계속 뉴스를 타고 있는 나오미 캠벨이 떠올랐습니다.
조심스레 진공관 파워의 스탠바이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부~웅하는 굉음이 리스닝 룸을 가득 채웁니다.
당황해서 파워 앰프 스위치를 내리는데
머리속으로는 무거운 어휘들이 지나갑니다.
"매칭, 상성, 임피던스, 댐핑 팩터..."
스피커케이블을 8옴 단자에 제대로 물리고 다시 전원을 넣어도
굉음이 줄지 않습니다.
대략 난감...
게시판에는 이런 현상을 보고한 글이 전혀 없었는데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파워앰프를 끄고 거실로 나가 한숨을 돌렸습니다.
전화를 해야하는 걸까?
막막한 심정으로 다시 리스닝룸으로 들어오는 순간
프리앰프의 LED 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인디케이터는 소스 - 바이패스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며칠전 놀러왔던 조카녀석들이 들락거리더니...
부랴부랴 S1 - DAC로 바로 잡고 파워 스위치를 올립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다행히 굉음은 사라지고 진공관 특유의 나즈막한 노이즈가 흐릅니다.
휴 ~ 십년 감수.
참 별난 상견례를 치르고서야
사용설명서를 펴고 소파에 몸을 젖혔습니다.
처음에는 즐겨듣는 몇 곡씩만 선별해서 들어보자고 시작했는데
연주가 시작되고나서는 정지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각 판의 끝 곡까지 다 듣고서야 판을 바꿀 수 있었다는...
원래 올려져 있던 첫번째 신나라 샘플러,
두번째 제니퍼 원스 음반에 이어
세번째 에바 캐시디 판이 "What a Wonderful World"에 이르자
스피커가 어디론지 사라져버렸습니다.
날을 세웠던 신경을 접고 그냥 편하게 음악이나 듣기로 했습니다.
짧은 재주로 이 스피커를 판단한다는 것이
참 무의미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경험도 일천하고 내공도 짧지만
십년 남짓 오디오라이프에서 만나게 된
가장 인상깊은,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내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그러나 가장 완성도 높은 스피커를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현실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두세시간 남짓 들어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점들을 간단하게나마 꼽아보자면
우선 탁월한 분해능이 돋보입니다.
악기 개수나 오케스트라 규모에 상관없이
소리의 섬세하고 생생한 디테일을 낱낱이 그려내는 놀라운 능력은
새삼 투입된 고급 유닛들의 명성을 실감케 합니다.
다음으로는 탁월한 밸런스.
흔히 듣는 "Way Down Deep"에서 볼륨을 올리거나 내려도
제니퍼 원즈의 보칼이 인스트루먼트들과 정확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묻히지도 튀지도 않고 생생하게 살아 숨쉽니다.
베이스에서 킥드럼, 쉐이커까지 균형잡힌 사운드는
무대 전체의 앰비언스를 생동감있게 그려냅니다.
이사장님이 늘 얘기하시던 라이브 현장의 살아있는 음악이란게
이런 얘기였구나 싶었습니다.
스펙상 40Hz에서 시작되는 저역대가 내심 걱정이 됐었는데
4평짜리 리스닝 룸에 부밍이 걱정될 만큼 충분한 저음을 구사하네요.
바이올린에, 피아노에, 오케스트라에...
한 참 음악을 듣다 바람도 쐴겸 잠시 쉬러 나온 김에
거실에 있던 박스를 갖다 버렸습니다.
스피커 받아서 겨우 반나절 들어보고
미사여구만 늘어놓자니 참 낯이 간지럽기도 하지만
기다린 기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탁월한 스피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시는 회원님들 힘내시구요.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이런 명품을 만들어주신 에이프릴뮤직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일 마치고 와서 사진도 한 컷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의 리스닝룸 시스템 구성은
칸 CDT - 파에톤 DAC - 오푸스 프리 - 845PP 파워앰프 - 스테이트먼트입니다.